집 앞에 너댓 평의 텃밭을 일구고
상치를 뿌리고 토마토를 심고 쑥갓을 갈고
가지를 심고 곁으로 고추까지 모종했습니다.
딸기도 심었고 과꽃도 심었습니다.
그리고 올 해가 다가는 지금까지
부족하지 않는 즐거움과
반찬과 넉넉한 행복을 추수했습니다.
이제 내 년을 위해
작은 씨앗 주머니를 만들고
조금조금 담아서 걸어 둡니다.
이 씨앗은
단지 둥글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거나
셈하기 어려울 만큼 작지만
마치 우리의 꿈과 같은 것입니다.
누가 이 하찮은 씨앗을 보고서
다 자란 오이 넝쿨을 그릴 재주가 있겠습니까?
누가 이 작은 씨앗만 보고서
다 자란 토마토와 호박넝쿨을
상상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 이 작고 둥근,
특별한 모양새도 없는 이 작은 씨앗 속에는
이미 넝쿨과 잎과 꽃과 열매의 완성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 년에
이 씨앗은 그대로 기적같은 생명의 환희를
일 년 내내
우리에게 다시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도
이 작은 씨앗과 같아서
지금은 보잘 것 없는
둥글고 작고 눈에 뵈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시나브로 우리의 눈 앞에
사방으로 뻗어자란 현실로
이루어질 때가 있겠지요.
심은대로 거두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이 땅과 자연 그리고
인생에 베푼 분명한 법칙이니까요.
우리도 내년에 우리에게 다가 올 생명의
새로운 축제에 동참하기 위하여
각자의 가슴에 씨앗 주머니를 걸어 두어야 합니다.
마음에 담아 둘 삶의 씨앗을 소망이라고 합니다.
한 겨울 내내 작고 둥근 씨앗이 봄을 기다리듯,
겨우내내 씨앗이 오는 봄을 기다리듯
우리의 소망도
풍성한 믿음으로 배아를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생명의 씨눈이 되어
새로운 텃밭에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작은 씨앗 주머니 안에
정성스레 보관하는
이 보잘 것 없는 씨앗이
내 년에도 나에게 새로운 생명의 희망과 도전,
삶의 환희를 전해 줄,
소중한 내 삶의 씨앗이며,
나의 소망이며,
나의 열정이며,
나의 기쁨입니다.
2002년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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