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기름을 내면서
심농 김경준
엿질금을 보면 참 신기해요.
특별할 것도 없는 엿기름을
별맛 없는 곳에 넣고
끓이고 졸이면
맛있는 조청도 되고
식혜도 되고 고추장도 되고
한여름 뙤약볕에 목 타는 농부들에게는
시원하게 목 축일 수 있는 걸걸한 술도 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엿기름에게는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어요.
보리를 촉촉하게 젹서서
면포를 편 소쿠리에 가득 담아
따듯하게 두면
네 닷새 만에 촉이 터서
참새부리만큼 나지요.
그러면
사람이 덜 지나는 들마루나 툇마루에
멍석 펴고 널어서 보송하게 건조하고
건조된 보리싹은
절구로 듬성듬성 빻아서
자루에 포옥 싸서 둡니다.
그리고
손주들이 단 것을 찾을 때면 조청을 만들고
한겨울엔 살얼음이 절반인 식혜를 만들고
봄이면 매콤한 고추장을 만들고
여름이면 논밭전지 뙤약볕 농부들의
목마름을 후련하게 달래는 술을 만들 때
보잘 것 없는 엿기름을 조금씩 꺼내서 사용합니다.
광야처럼 황량한 세상
인생이 쓰고, 세상이 맵고, 살맛도 잃어
절망이 줄줄 새는 아파하는 모든 이들의
힘겨워진 삶,
열두 항아리
열두 달,
삼 백 예순 닷새마다
엿기름 두 됫박만 넣고
끓이고
달이고
졸여서
단맛나는 인생이 되었으면 참 좋겠는데...
2009년 2월 22일 엿기름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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